일생 신라에 빼앗긴 백제 땅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백제의 부흥을 꿈꾸었던 무왕은 서동요의 주인공, 선화공주의 남편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대 설화에서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인 서동, 즉 무왕과 선화공주 이야기를 들으며 두 사람의 흔적이 어린 익산의 미륵사지와 쌍릉으로 여행을 떠나볼까요?

1. '서동'이라 불리던 무왕, 용의 아들?
서동, 즉 무왕의 생가 터는 '그의 아버지는 연못에 살던 용'이라는 탄생 설화를 뒷받침하듯 연못 바로 옆에 있습니다. 이곳에는 서동의 어머니와 용이 무왕이 건립한 왕궁 쪽을 바라보는 동상이 있습니다. 무왕과 선화공주가 죽어서도 서로를 바라보며 그리워하는 듯한 모습을 한 쌍릉은 숲길 따라 산책하기에도 좋은 곳입니다.
무왕의 아버지는 법왕 또는 위덕왕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삼국사기'에 따르면 풍채가 뛰어나고 뜻과 기상이 호방하고 걸출하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너무나 유명한 '서동 설화'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야기로 무왕은 출생부터 남다릅니다. 무왕은 과부였던 그의 어머니가 집 앞 연못에 살던 용과 더불어 낳은 아이라고 하는데, 실제 용은 아닐 것이니 용은 바로 왕족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2. 선화공주가 그렇게 예쁘다고?
무왕은 어렸을 때부터 마를 캐며 생계를 유지했는데, 그래서 마 서(薯) 자를 사용해 서동(薯童)이라 불렸습니다. 그는 신라 진평왕(선덕여왕 아버지)의 셋째 딸 선화공주(선덕여왕 동생)가 최고의 미녀라는 소문을 듣고 서라벌(경주)로 가서 선화공주가 밤마다 남들 몰래 서동과 어울린다는 노래를 지어 마를 공짜로 나눠주면서 아이들에게 부르게 한 거죠.
이것이 바로 '서동요'입니다. 그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선화공주님은(선화공주님은) 남 그즈지 얼어 두고(남몰래 시집을 가서) 맛둥방을(맛둥 서방을) 밤에 몰 안고 가다(밤에 몰래 안고 잔다).'

3. 소문은 일파만파, 서동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무척 잘 지었나 봅니다. 부르기 쉽고 중독성이 강해 서라벌 안에 삽시간에 퍼지게 되었죠. 그래서 이런 추한 소문이 진평왕의 귀까지 들어가고 선화공주가 궁궐에서 쫓겨나 귀양을 가게 되자 서동이 그 앞에 나타났습니다. 선화공주는 잘생긴 그의 얼굴을 좋게 보았는지 그에게 반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서동은 선화를 데리고 백제로 왔고, 마를 캐던 곳에서 흔하게 있던 황금을 캐 선화공주의 아버지 진평왕에게 보내 왕의 마음을 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황금을 보낼 때 지명법사라는 스님이 도술로 선화공주가 쓴 편지와 함께 엄청난 양의 금을 하룻밤 사이에 신라 궁궐로 모두 옮겨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이후 백성들의 민심을 얻어 백제 왕이 되었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 바로 서동 설화입니다. 그리고 선화공주의 부탁으로 익산에 거대한 사찰인 미륵사를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거의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못지않은 우리나라 고대사의 세기의 로맨스라 불리며 전혀 의심받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4. 그런데 그는 진짜 선화공주의 남편인가?
하지만 무왕 때는 신라와 크고 작은 전쟁을 계속 벌일 정도로 깊은 갈등 관계였는데, 선화공주가 진짜 무왕의 왕비이기는 힘들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또 결정적으로 지난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 작업 당시 석탑 안에서 석탑을 만들게 된 과정을 적은 금판이 발견되었는데, 거기에 무왕의 왕비는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며 그녀가 발원해 석탑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서동과 선화공주 이야기는 그냥 후대에 꾸며낸 설화에 불과한 거죠. 그래서 서동은 무왕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신라와 국혼을 했던 동성왕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 금판에 집과 탑을 세 군데 세웠다고 하니, 그중 하나는 선화공주 이야기가 담겨 있었을 수도 있죠. 고대 왕들의 왕비가 한 명만은 아니니까요. 이렇게 서동과 선화공주 이야기는 백제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5. 무왕 관련 여행지 둘러보기
무왕이 태어났고 새로운 수도를 꿈꾸었다고 알려진 익산에는 그에 관련된 유적지가 있습니다.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를 떠올리며 함께 둘러볼까요?
1) 서동 생가 터 & 연동제(마룡지)
무왕 생가 터라고 알려진 장소와 함께 있는 연못인 연동제(마룡지)는 '용 샘'이라고도 합니다. 바로 연못 속에 살고 있던 용과 인연을 맺어 서동을 낳았다는 설화의 배경이 된 곳입니다. 이곳은 왕궁리 유적과 쌍릉에서 각각 1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세 곳을 연결하면 삼각형을 이루어 무왕이 자신의 탄생지를 중심으로 좌우에 삶과 죽음의 공간을 만든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무왕이 세운 백제 왕궁 방향을 보고 있는 용과 서동의 어머니 동상이 서 있습니다. 덱을 따라 연못가를 산책할 수 있는데, 여름이면 아름다운 연꽃이 피는 연못으로도 유명합니다.
2) 쌍릉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이라 하는 쌍릉은 무왕의 무덤이 대왕릉, 선화공주의 무덤이 소왕릉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약 200m의 거리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두 무덤은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며 쌍릉 옆에는 예쁜 공원이 위치합니다. 대왕릉은 지름 30m, 높이 5m 정도의 원형 무덤으로, 부여 능산리 고분들과 마찬가지로 판석제 굴식 돌방무덤 양식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2018년에 쌍릉의 대왕릉에서 키 161~170cm로 추정되는 사람 뼈 102개가 새로 발견되었는데, 연구 결과 620~659년에 사망한 50대 이상의 남자 유골로 밝혀졌습니다. 따라서 이 유골이 무왕의 유골로 거의 인정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