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 포석정, 한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직접 답사하고 싶어 하는 경주 남산은 넓고 험한 산지 곳곳을 따라 불교 유적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무언가를 이루려는 태도도 없는 위치에 서 있는 많은 불상과 탑 등을 올리다 보면 당시 사람들이 가졌던 간절하고 신성한 불심이 저절로 느껴집니다.
'지붕 없는 박물관'인 경주 남산은 산세가 험한 곳이 많아 본격적으로 탐방하는 코스는 아이가 최소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인 경우 추천합니다. 삼릉 소나무 숲은 새벽안개에 잠긴 멋진 사진으로도 매우 유명하니 그때 방문해 풍경을 감상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1. 경주 남산 & 포석정 -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
신라 시조 박혁거세는 나정이라는 곳에 흰 말이 남기고 간 자줏빛 알에서 탄생했고, 이후 신라의 전신인 진한 땅 여섯 마을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박혁거세의 부인인 알영부인은 알영정이라는 우물가에 용이 나타나 옆구리로 낳은 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 이름을 지을 때 우물 이름을 따서 '알영'이라 했다고 합니다.
2. 경주 남산 & 포석정 - 골품제와 김유신
이렇게 태어날 때부터 범상치 않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신라 왕족들은 특별한 신분을 가지게 됩니다. 신라의 독특한 신분 제도인 골품제는 혈통에 따라 신분이 정해졌습니다. 성골, 진골, 6두품, 5두품, 4두품 등으로 나눠지며 김·박·석 씨 등의 왕족이 성골과 진골이 되고, 족장 세력이 6두품이 되었습니다.
골품은 가문의 신분과 지위에 바로 연결되는 것으로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 있고, 집을 지을 수 있는 최대 크기, 옷의 외부 빛깔을 비롯해 하다못해 마차 장식과 수레의 크기, 형태까지 엄격하게 제한되었습니다. 그중 혼인이 가장 엄격했는데, 가야계 사람들은 같은 진골이라도 차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금관가야 출신인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도 진흥왕의 조카인 만명부인과의 결혼과 출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성골은 가장 높은 신분으로 왕족 중에서도 일부만 해당되며 성골에서만 왕이 나올 수 있어 '성스러운 골품'이라 합니다. 성골 다음 계급인 진골 또한 왕족이기는 하지만 왕이 될 자격이 없었고, 진덕여왕을 끝으로 성골이 끝나자 진골인 김춘추가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골품제 중 비교적 신분이 높았던 6두품 출신도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고위직인 5등급 이상의 아찬부터 대아찬에는 오를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불만은 계속 커졌고, 이는 신라 말기 사회 혼란의 원인이 됩니다.
3. 경주 남산 & 포석정 - 남산 둘러보기
40여 개 골짜기로 되어 있는 경주 남산은 130여 곳의 절터, 100여 구의 석불, 70여 기의 탑이 있는 그야말로 '지붕 없는 박물관'입니다. 산 전체를 부처님의 나라, 즉 불국토로 만들려 했던 신라인들의 깊은 신앙심과 강한 의지가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광대한 산에 넓게 펼쳐져 있어 남산에 있는 유적을 찾아 구석구석 둘러보는 코스도 여러 개라 열흘도 부족합니다. 경주 남산은 산세가 험한 편이라 아이를 동반한다면 등반하기 쉽지 않은 코스가 대부분이라는 점도 참고하세요. 아이와 함께 가볍게 둘러보고 싶다면 삼릉에서 시작해 삼릉곡 석조여래좌상(경주 배동 삼릉곡 석조여래좌상),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경주 삼불사 불상) 코스를 추천합니다.
1) 삼릉 ~ 금오산 정산 ~ 용장마을 코스 (서남산 코스)
남산 인기 코스 중 하나로 삼릉계곡에서 시작해 용장사터까지 천천히 5~6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배병우 사진작가가 소나무를 통해 촬영한 장소인 삼릉은 새벽에 안개가 자욱한 솔밭에 햇살이 비치는 사진 속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삼릉계곡에서 시작되는 코스를 따라가다 보면 머리는 없지만 남은 흔적만으로도 훌륭한 모습인 좌상, 관음보살을 새긴 마애불, 석조여래좌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릉선에서 조금 올라가면 남산 불상 중 가장 크고 머리 부분 조각이 아름다운 마애대불(마애관음보살상)이 있는데, 높이가 5.3m, 너비는 3.5m에 이르는 거대한 불상입니다. 계속 능선을 오르면 금오산 정상에 닿고, 아래쪽 바윗길을 따라 내려가면 암벽 위에 서서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경주를 내려다보고 있는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이 있습니다. 하부 기단이 띠를 두르고 세 겹의 원형 받침 모양인 것이 특징입니다.
그 밑으로는 바위에 새겨진 뚜렷한 이목구비의 마애여래좌상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고, 용장사석불좌상은 3층의 대좌 위에서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안고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생육신 중 한 사람인 김시습이 머물며 소설 '금오신화'를 썼다는 용장사 터를 지나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용장마을이 나오니 여기서 답사를 마치면 됩니다.

2) 칠불암 ~ 신선암 (동남산 코스)
국보로 지정된 칠불암 마애불상군과 더불어 신선암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일품인 신선의 파노라마를 감상해 보는 코스도 있습니다. 통일전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남산리삼층석탑을 지나 봉화골 계곡을 따라가는 가파른 등산로를 올라가면 됩니다. 대나무 숲을 지나 도착하는 칠불암 앞에는 바위에 새겨진 불상이 있고, 그 앞 돌기둥에 4구의 불상이 있어 칠불암으로 불립니다. 가운데가 본존불이며 좌우에는 협시보살이 있으며, 그 앞 바위 사면에 새겨진 불상들은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칠불암에서 올라다 보면 바위 정상에 또 하나의 마애불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입니다. 만만치 않은 길을 오르면 만날 수 있는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은 다른 불상과는 달리 가부좌를 풀고 오른발을 아래로 뻗은 독특한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
4. 경주 남산 & 포석정 - 삼릉 & 나정 둘러보기
구불구불한 모양의 소나무가 빽빽하게 숲을 이루는 울창한 삼릉을 지나 나오면 삼릉은 8대 아달라 이사금,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입니다. 하지만 능 자체보다 아름다운 솔숲으로 더욱 유명하며, 사진작가들의 성지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작품이 이곳에서 탄생했습니다.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 탄생 설화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오래된 우물입니다. 당시 경주를 구성하고 있던 6촌의 촌장 중 하나가 나정을 지나가다 말이 무릎을 꿇고 서 우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까이 가보니 자줏빛의 큰 알이 있었고, 이 알에서 건강하고 잘생긴 아이가 나오니 그가 바로 박혁거세였습니다. 나정에서는 팔각형 건물 터와 타원형 우물 터가 확인되어 이곳이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제사 시설인 신궁 터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5. 경주 남산 & 포석정 - 포석정 둘러보기
통일신라시대 가장 번영했던 하강기 사회는 '금성(수도 경주)에서는 기와 처마가 줄을 이어 비 맞을 일이 없었다'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매우 부유한 시대였습니다. 이때 조성된 포석정은 중국 영휘 왕희지가 벗들과 함께 물 위에 띄운 술잔이 자신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지어 읊고, 그때까지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를 마시는 놀이를 했다는 것에 착안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포석정은 22m 물길에 6cm 정도의 높낮이가 있어 물이 돌도록 만들어 놓았고, 물길 모양이 마치 전복 모양과 비슷하다 해서 전복 포(鮑)자를 넣어 포석정이라 이름 지어졌습니다. 또 927년 신라 55대 경애왕이 이곳에서 연회를 즐기다 후백제 견훤에게 잡혀 자결한 장소라고 합니다. 그런데 포석정은 보통 여흥을 즐기던 장소로만 알려져 있지만 왕과 귀족이 모여 회의를 하거나 제사를 지낸 장소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일단 경애왕이 붙잡혀 죽은 것은 한겨울인 12월인데, 그 추운 겨울에 물에 술잔을 띄워놓고 연회를 하고 있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그러니 경애왕이 이곳에서 잔치를 베풀며 놀고 있다가 적군에게 잡혀 죽었다는 내용은 어느 정도 승자의 관점에서 쓴 기록이 아닐까요? 오히려 국운이 다해가는 상황은 점점 꺼져가는 불꽃같은 신라를 구원해 달라고 제사를 지내던 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포석정은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사적 1호로 지정되었는데, 나라는 망해가는데 유흥만 즐기던 왕이 놀다 죽은 장소라며 우리나라를 모욕하기 위해 일부러 1호로 지정하며 조롱하는 의미를 담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6. 경주 남산 & 포석정 - 오릉 & 서출지 둘러보기
신라 역사 초기를 이끈 박혁거세와 그의 부인 알영부인, 2대 남해 차차웅, 3대 유리 이사금, 5대 파사 이사금의 능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경주의 숭덕전은 박혁거세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곳으로 1년에 두 번씩 제사를 기리는 제례를 지냅니다. 숭덕전 뒤에 있는 알영정은 알영부인이 탄생한 곳이라 전해집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박혁거세는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만에 하늘로 올라가고 7일 뒤에 몸이 5개로 나뉘어 땅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를 합쳐 모아 장사하려 하자 큰 뱀이 나타나 막았고, 그래서 그냥 그대로 다섯 군데에 각각 묻었다고 합니다. 이곳이 바로 이곳으로 긴 뱀 '사' 자를 사용해 사릉(蛇陵)이라고도 부릅니다.
적은 연못이지만 연꽃이 가득 피기도 하고 주변에 늘어진 나무들이 많아 운치가 있는 곳입니다. 연못을 다스려 고치고 있는 정자 이요당은 1664년에 이곳의 풍류를 즐기기 위해 세웠다고 합니다. 서출지는 신라 소지왕이 행차했을 때 쥐가 나타나 까마귀를 따라가 보라 해 후던 중 이 연못에서 노인이 나타나 편지를 주어 암살 계획을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왕은 급히 궁으로 돌아와 음모를 꾸미던 왕비와 중을 죽였다고 하네요. 그래서 '연못에서 글이 나왔다'라는 의미로 서출지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근처에 남산리삼층석탑, 정강왕릉, 헌강왕릉 능 등이 있어 함께 둘러봐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