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왕릉 & 수로왕릉비, 가야는 비록 고구려, 백제, 신라와는 달리 중앙집권 국가로는 발전하지 못하고 연맹 왕국 단계에서 멸망했지만, 500여 년의 긴 역사와 더불어 뛰어난 철기 문화를 소유한 나라였습니다. 삼국에 비해 관심도도 높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면이 많았지만, 최근 가야사를 재조명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고대 가야와 인도 왕국의 미스터리를 품고 있는 수로왕비릉을 둘러보고, 가야인들이 구지가를 부르며 왕이 될 사람을 기다리던 구지봉에 올라가 보세요. 국립김해박물관에서는 '철의 왕국 가야'의 명성에 걸맞은 뛰어난 철기 유물을 볼 수 있습니다.

1. 수로왕 - 하늘에서 내려온 6개의 황금알
낙동강 하류 지역에 있던 변한 땅에서 서기 전후로 가야의 여러 나라가 생겨납니다. 가야의 시조는 김수로, 즉 수로왕으로 그의 탄생 설화에 얽힌 '구지가(龜旨歌)'의 가사는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약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는 거의 협박성 내용입니다.
당시 가야에는 임금이 없어 9명의 족장이 백성을 다스렸는데, 김해에 있는 구지봉에서 "여기 내가 왕이 되러 왔노라! 산봉우리 꼭대기에 가서 흙을 파며 노래를 부르면 임금을 얻을 것이니라"라는 소리가 들려 족장들이 백성들을 구지봉으로 데려간 후 하늘의 계시대로 흙을 파헤치며 구지가를 불렀다고 합니다. 300여 명의 백성이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자 하늘에서 보라색 줄에 매달린 6개의 황금알이 내려왔습니다. 그 알에서 6명의 아이가 나왔고, 그들은 10일 만에 어른이 된 후 각각 6가야의 왕이 됩니다. 그리고 그중 제일 큰 알에서 가장 먼저 나온 사람이 바로 수로왕이며, 그가 금관가야의 왕이 됩니다.
2. 수로왕 - 김수로와 허황옥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뜻의 '수로'라 이름 붙은 그는 인물이 훤한 것은 기본이고 키가 9척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9척은 대략 180cm~2m라 지금으로서도 매우 큰 신장입니다. 그는 왕이 된 이후 배를 타고 온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과 결혼했는데, 아유타국은 고대 인도의 아요디아(Ayodhya) 왕국으로 추정됩니다. 또 그는 우리나라에 400만 명이 있다는 김해 김씨의 시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 태어난 10명의 아들 중 둘은 왕비의 성을 받아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었는데, 이에 김해 김씨와 허씨는 혼인이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6개의 작은 왕국이 연합한 가야의 구성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해를 중심으로 한 금관가야, 함안 중심 아라가야, 진주 중심 고령가야, 고성 중심 소가야, 성주 중심 성산가야, 고령 중심 대가가야입니다. 이 중 전기와 후기를 이끌던 금관가야와 대가가야를 중심으로 가야의 주요 유적이 많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가야는 3~5세기 초까지 김해에 위치한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연맹 왕국을 이룹니다. 금관가야는 일찍이 우수한 철기 문화를 소유했고, 낙동강 하류에 있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해상 활동에 유리했습니다. 금관가야는 질 좋은 철을 가지고 무기 등 다양한 철제 도구를 만들었으며, 덩이쇠를 만들어 화폐처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바닷길을 통해 낙랑과 왜에 수출하며 발전해나갑니다. 당시 철을 잘 다루는 것은 최첨단 기술이었습니다. 가야에서 생산된 철은 덩이쇠 형태로, 당시 국제적으로 평판이 높은 제품이었습니다. 덩이쇠는 '철정'이라고도 하며, 이미 정련 과정을 거친 쇠였기 때문에, 이를 불에 달궈 두드리면 쉽게 원하는 형태의 도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3. 수로왕 - 금관가야 따라가기
김해를 중심으로 발전한 금관가야를 따라가는 여행에는 흥미로운 여행지가 많습니다. 가야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립김해박물관과 수로왕의 이야기가 담긴 구지봉, 수로왕릉, 수로왕비릉 등을 함께 둘러보면 좋습니다.
1) 수로왕비릉
'허황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수로왕의 왕비는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수로왕릉과 마찬가지로 5m 높이의 원형 봉토 무덤이며, 봉분을 두르는 호석은 없습니다. 능의 음수대에는 두 마리의 물고기가 서로 마주 보는 쌍어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쌍어문은 가야의 국교였거나 신앙의 상징인데, 고대 바빌로니아인 또한 물고기가 인간을 보호해 주는 존재라고 생각해 이것으로 문장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쌍어문은 인도와 한국을 연결하는 증거라 할 수 있는 것이, 이런 쌍어 문양은 우리나라 다른 유적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눈길을 끄는 것은 능 앞에 있는 파사석탑의 석재입니다. 허황옥이 아유타국에서 배를 타고 올 때 바람과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함께 싣고 왔다고 하는데, 현재의 탑 모습은 많이 잃어버려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붉은빛이 도는 돌은 우리나라에는 없는 종류라고 합니다. 석탑 뒤편 장군차나무는 허황옥이 가야에 오면서 가져온 예물 중 하나로 인도에서 봉차 씨앗을 가져와 이 근처에서 재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왕비릉 근처에 과거에는 다전마을이라 불리던 넓은 차밭이 크게 있었다고 합니다.
2) 구지봉
수로왕비릉 옆에 있는 구지봉은 작은 봉우리지만 가야 건국 설화를 담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 정상에는 '대가락국 태조왕 탄강지지'라 새겨진 비석이 있습니다. 또 거북이 머리 모양을 닮은 커다란 돌도 서 있어 설화 속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구지봉으로 올라가다 보면 고인돌이 보이는데, 그 위에 '구지봉석'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명필로 유명한 한석봉이 쓴 것이라 전해집니다. 구지봉에서 수로왕비릉은 걸어서 갈 수 있는데, 이때 도로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습니다. 이 다리 아래 도로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거북의 목에 해당하는 부분을 일부러 훼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3) 국립김해박물관
전기 가야 연맹체를 이끌었던 금관가야 등 가야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총 1,3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층에서는 낙동강 하류에 형성되었던 선사시대부터 가야의 여명, 가야의 성립과 발전에 대해 볼 수 있고, 가야인의 삶을 주제로 한 2층 전시관에서는 가야 토기, 갑옷, 투구 등의 철기 유물, 해상 왕국 가야에 관련된 유물 등이 있습니다. 야외에는 옛사람들의 매장 방식을 알려주는 고인돌과 돌널무덤, 돌널덧무덤이 있고, 어린이박물관에서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4) 대성동고분군 & 박물관
1~5세기에 걸친 가야 지배층의 무덤이 밀집한 곳으로 1~3세기 무덤은 평지 쪽에, 4~5세기 무덤은 구릉 정상부에 있습니다. 고인돌을 비롯해 널무덤, 덧널무덤, 굴식돌방무덤 등 다양한 형식의 무덤이 발견되었습니다. 고분군 옆에는 대성동고분박물관이 위치하니 함께 둘러보세요.
5) 수로왕릉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의 무덤으로 납릉(納陵)이라고도 합니다. 높이 5m의 원형 봉토 무덤입니다. 문인석과 무인석이 앞을 지키고 있는 능 주변으로 수로왕의 신위를 모신 숭선전과 안향각, 숭재, 홍살문, 숭화문 등의 부속 건물이 있습니다. 왕릉 앞 납릉정문의 화반 위에는 석탑을 가운데 두고 두 마리 물고기가 마주 보는 쌍어문이 새겨져 있고, 왕릉 왼쪽 비석에는 태양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둘 다 인도의 아요디아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 이를 통해 두 나라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6) 봉황동 유적
금관가야 최대의 생활 유적지인 봉황대가 있는 곳으로, 초기 철기 시대 유적입니다. 1~4세기경 가야의 생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으며, 가야시대 대표적인 조개무지(패총)와 토기 조각, 철기, 골각 제품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가야시대 주거지와 고상 가옥, 선박, 망루 등을 복원 설치해 당시 생활상을 실감 나게 알아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