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공주 볼거리 중 가장 중요한 곳 중 하나가 무령왕릉이 있는 송산리고분군입니다. 송산리고분군은 백제 웅진시대의 왕과 왕족의 묘가 모여 있는 곳으로 동쪽에 1~4호분, 서쪽에 무령왕릉과 5~6호분이 있습니다. 입구에 도착하면 무령왕릉의 마스코트라 할 수 있는 진묘수(석수)가 늠름하게 서서 반겨줍니다.
세계유산도시 공주를 떠난 여행에서 백제 왕릉이 모여 있는 송산리고분군을 방문해 보세요. 공주, 부여, 익산에 있는 '백제 역사 유적 지구'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아주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1. 무령왕릉이 왜 특별한가요?
백제 25대 왕 무령왕의 무덤인 무령왕릉은 묘지석이 발견되며 이곳이 누구의 무덤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현재 삼국시대 무덤 중 피장자의 신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고대 왕릉입니다. 이곳에서는 총 108종 4,600여 점의 수많은 문화재가 나왔는데, 그중 묘지석과 진묘수를 비롯해 왕과 왕비의 금제 관 장식, 금제 귀걸이, 왕의 나무 발받침, 청동거울, 금제 뒤꽂이, 금제 아홉 마디 목걸이, 다리작명 은제 팔찌 등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무령왕릉은 그야말로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엄청난 발견이었습니다.
왕릉이 발견된 것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사건입니다. 왕릉은 배수로 공사를 하다 우연히 발굴되었는데, 다행히 도굴당한 적이 없어 1,500년 전 모습을 그대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1971년 7월, 장마철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배수로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송산리 고분 6호분의 공사와 발굴을 진행하던 당시 공주박물관장이 괴상하게 생긴 짐승이 갑자기 달려드는 꿈을 꾸고 깜짝 놀라 깼다고 합니다. 그리고 운명의 그날, 현장 인부의 삽에 벽돌이 부딪히면서 1,500년 가까이 잠자고 있던 무령왕릉이 세상에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 거죠. 아마 소장에게 달려든 짐승은 무령왕릉에서 왕과 왕비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던, 돌로 만든 진묘수가 아니었을까요?

2. 무덤의 주인 무령왕은 누구인가요?
지금의 한강 유역인 한성 지역을 빼앗긴 백제에는 이후 혼란이 거듭되었는데, 이런 백제에 다시 한번 부흥의 기운을 불러일으킨 왕이 무령왕(재위 501~523)입니다. 무령왕은 '8척(약 184cm) 키에 눈매가 그림 같고 용모가 아름다웠으며, 성품은 인자하고 관대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귀족 세력을 적극 경계하면서 왕권을 안정시키고, 지방 행정구역이었던 담로에 왕족을 파견해 지방 세력 통제를 강화합니다. 또 중국 남조(남북조시대 중 5~6세기 양쯔강 하류에 있던 4 왕조에 대한 칭호)의 양나라와 국교를 맺어 문화 교류에 힘쓰고 고구려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공세를 합니다. 이러한 그의 노력으로 백제는 조금씩 국력을 회복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왕릉에서는 무덤의 주인을 알려주는 묘지석(지석),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인 진묘수, 중국 동전인 오수전, 금 장식품, 중국식 청동거울, 도자기 등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무령왕릉은 벽돌을 쌓아 만든 벽돌무덤 양식으로 이는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또 부부의 시신을 묻은 관은 일본에서 자라는 소나무인 금송으로 만든 것으로 보아 당시 백제가 중국, 일본과 활발하게 교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귀중한 유물은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서 관람할 수 있으니 꼭 직접 감상해 보세요.

3. 무령왕릉 둘러보기 - 어떻게 둘러볼까요?
송산리고분군에 들어가면 모형 전시관이 있으니 이곳 먼저 둘러보면 좋습니다. 발굴 과정 설명, 발굴 당시 모습을 재현해 놓은 모습과 더불어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볼 수 있는데, 이곳에 있는 것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무령왕릉과 6호분 등 주요 무덤 내부를 실제 크기로 재현해 내부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것이 흥미로운데, 진짜 무덤에는 들어갈 수 없으니 이곳에서 찬찬히 살펴보세요. 전시관을 나오면 언덕을 따라 올라가며 실제 고분군을 둘러보세요. 내부 보존 관계로 겉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무령왕과 당시 백제의 모습을 상상하며 둘러보면 좋겠습니다.
송산리 1~5호분은 널방과 널길을 만든 굴식돌방무덤, 즉 횡혈식 석실묘입니다. 굴식돌방무덤은 한성 백제 말기부터 백제 왕실 묘에 적용되었고, 웅진으로 천도한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송산리 5호분은 5~6세기 굴식돌방무덤의 전형적인 모습인데,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깬 돌을 이용해 널방, 널길을 만들고 천장이 돔 형태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6호분과 무령왕릉인 7호분은 벽돌을 쌓아 만든 무덤인 전축분입니다. 6호분의 가장 큰 특징은 네 벽면에 사신도가 그려진 벽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6호분 벽돌은 중국 양나라 화폐인 오수전 문양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크기와 똑같이 재현되어 있는 무령왕릉은 벽돌로 이루어진 전축분입니다. 왕릉 입구는 아치문으로, 아치를 만들기 위한 역사다리꼴 벽돌의 크기와 모양이 서로 다른 것은 완벽한 아치문의 구조를 만들고 튼튼히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내부 벽돌은 연꽃 문양을 하고 있는데, 2개의 벽돌이 마주하며 하나의 연꽃을 이루는 것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언뜻 모두 같은 듯 보이지만 왕릉을 구성하는 벽돌은 총 28종으로 서로 다른 벽돌을 사용해 완벽한 구조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벽면을 보면 망자를 위한 가짜 창문(가창) 위에 등감이 파여 있는데, 이는 등잔불을 넣어 불을 밝힌 곳입니다. 언뜻 지하 세계를 밝히는 빛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여기에는 백제인들의 뛰어난 지혜가 숨겨져 있습니다. 왕릉에 함께 묻힌 값진 부장품의 산화와 부식을 막기 위해 무산소 공간을 만들려고 일부러 등잔불을 밝힌 후 무덤 입구를 막은 것입니다. 불이 타려면 산소가 필요하니 등불을 붙여 산소를 다 태운 후 내부가 무산소 공간이 되도록 한 거죠. 실제 등감에서는 타다 남은 심지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4. 무령왕릉 - 발견 당시 모습 모형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유물이 발견 당시 어떤 상태였는지 알 수 있는 모형입니다. 진묘수 앞에 놓인 평평한 돌은 지석으로, 여기 새겨진 글로 무덤 주인이 무령왕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위에 놓인 넉넉한 돈 꾸러미는 저승길을 위한 노잣돈이 아닙니다. 이는 도교식 방식을 도입한 백제의 장례 문화로 토지신에게 무덤을 쓴 땅을 구입한 값을 넣어둔 것입니다. 이 돈은 양나라 오수전으로 당시 두 나라가 활발하게 교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이 오수전은 양나라에서 무령왕이 죽은 후 애도의 뜻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흩어져 있는 유물과 왕과 왕비를 모셨던 금송관 등의 흔적 또한 찬찬히 살펴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